자인과 졸렌
철학에서는 어떤 개념을 자인과 졸렌으로 구별합니다. 둘 다 독일어로 자인은 영어의 이제와 가깝고 졸렌은 슈드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자인은 사실 존재 팩트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 쉽고 졸렌은 규범 당위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서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팩트는 자인에 가깝고 도덕규범 윤리 이런 쪽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졸렌에 가깝습니다. 우리 논리에서는 자인과 졸렌이 헷갈리면 커다란 오류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인과 졸렌을 잘 구별하는 것이 철학에서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문과와 이과라는 구별은 상당히 올드한 개념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좀 직관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 개념을 빌어서 이야기를 한다면 저는 문과 쪽 학문에 발을 담그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졸렌에 해당하는 개념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좀 시간이 지나니까 약간 권태로워지기도 하고 회의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과연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이러한 명제들이 도그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이런 자인에 해당하는 개념들은 좀 명쾌하고 사실을 우리에게 증거로 딱 보여주기 때문에 참 좋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인간에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자인과 졸렌 사이에서 멋진 균형을 보여주면서 외줄 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악설과 성선설에 대해 과학자가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 진화 생물학자들입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비교하면 훨씬 더 쉽고 직관적으로 쓰여 있기에 저와 같은 과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읽기에도 너무나 재미있다고 느껴져 나는 과학 책을 좀 읽기 어렵다 하는 분들도 한 번쯤 읽어보시면 재밌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정함과 진화의 상관관계, 자기가축화 가설
우리는 일반적으로 다윈의 진화론 하면 적자생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데 이 책은 그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진화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고 이렇게 번성하게 된 것은 적자생존이라는 강한 자가 살아남은 그런 결과가 아니라 친화력이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강력한 논거로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이 바로 자기 가축화 가설입니다. 자기 가축화란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축화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나를 축하했단 말이야 이렇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스스로를 길들이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침팬지가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라고 많이 연구를 해 개에 대한 연구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들은 인간의 친구인 개가 가지고 있는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을 실험을 통해서 증명합니다. 그리고 침팬지 말고 보노보라는 영장류를 연구한 내용들도 있습니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달리 상당히 친절한 영장류인데 왜 이들은 이런 식으로 진화해 갔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고 그 실험 방법들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그러면 독자들은 어떤 동물은 친화력이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다른 동물은 그렇지 않았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보노보와 침팬지의 예를 들자면 보노보가 있는 곳은 자원이 풍부하고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그런 곳이었기에 그래서 암컷이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서로를 챙기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수컷 같은 경우가 다정한 수컷이 선택되는 식으로 진화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용과 친화력을 지닌 개체군이 살아남게 되었다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동물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서 사람 자기 가축화 가설을 제시합니다. 우리 인간도 이런 식으로 발달을 했다는 것입니다. 자연선택이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했고 인간은 친화력을 바탕으로 협력적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 플러스된 특별한 능력이 자제력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과 자제력 그리고 감정 조절 능력을 결합함으로 인해서 다른 동물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로 인해서 극도로 문화적인 종이 탄생하게 된 게 바로 인간입니다. 우리의 사회적 연결망은 극도로 확장되었고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그 안에서 또 다른 기술이 발전하게 되고 더 무리가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선순환을 통해서 인류가 이렇게 진화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만 가진 흰자위
우리 인간은 다 다양한 머리, 색깔, 피부, 색깔 그리고 눈동자 홍채 색깔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흰자위 곡막이 하얗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동물 중에는 이렇게 하얀 곡막을 가진 동물이 없다고 합니다. 다른 동물들이 곡막을 하얗게 만들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자신의 시선을 숨기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고 이게 훨씬 더 생존에 유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흰 곡막을 가짐으로써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게 더 유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눈빛 눈짓을 통해서 서로 협력적인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눈을 붙여놓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굉장히 다른 행동을 하게 한다고 합니다. 어떠한 눈을 보는 것만으로 인간은 상당히 커다란 영향을 받도록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이 눈자위가 하얀 흰 곡막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우리 인간의 이런 여러 가지 의사소통 능력을 서술합니다.
집단 내 타인과 타인의 비인간화
우리는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 보다도 훨씬 더 넓은 범주의 사람들에게 친밀함을 느낍니다. 이것을 바로 집단 내 타인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나와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와 같은 나라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친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의 범주를 점점 키울 수 있는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집단 내 타인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까지도 사랑하게 됐고 이 확장된 가족 개념은 과거 우리 종의 성공에 이바지했으며 미래도 희망적이다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쭉 보면 인간은 선한 존재 같고 서로서로에게 친밀한 그런 존재인 것 같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아주 어두운 역사들이 있습니다. 유대인 학살과 같은 비극을 저자는 우리가 더 강렬하게 사랑하게 된 이들이 위협을 받을 때 사람은 더 큰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거라고 설명합니다. 이때 우리는 타인을 비인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타인이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의 모든 선한 본능은 다 사라지고 그리고 마음 이론이라는 특별한 능력이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우리 집단 소속이 아닌 사람들의 기본 인권에 눈 감는 것도 이 능력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최고로 선한 존재임과 동시에 최고로 악한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대안으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합니다. 우리 내면의 어두운 속성을 지속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는 민주주의라는 비인간화 백신이 존재하고 우리가 많은 이들을 나와 다른 사람들을 자주 접할 때 우리의 이러한 비인간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거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백신
이 책은 그래서 진화에 대한 이해로 시작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한 방향 대안까지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분석에서 시작해서 사회 정치 문화적인 해결 방법까지 함께 담고 있는 내용들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악마를 뜻하는 영어 단어 데빌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어로 나누다 동강내다 라는 단어에서 왔다고 하는데 우리 인류가 서로를 나누고 나와 다른 사람을 비인간화하고 서로서로를 이렇게 동강 내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바로 인간이 악마가 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다정함 그리고 의사소통이 지금 우리 인류를 이렇게 발전시켜 왔는데 여기서 우리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성의 악한 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들어서 각 범주끼리의 마찰과 혐오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이 서로 친밀하고 민주주의라는 백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비인간화하는 시작이 아닐지 경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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